뭘 좋아하는지는 늘 분명했는데, 어느 순간부터 그걸 잊고 살았다. 그러다 이따금 꺼내본다. 그때 듣던 음악을 다시 틀면 그때의 기억 속으로 그대로 들어간다. 좋아하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, 영화의 대사 한 줄에도 한참을 머문다. 몇 시간이 그냥 간다. 다음 날 피곤할 걸 알면서도 멈추기가 어렵다.

그럴 때마다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다. 그런데 그 마음까지 옮기는 건 쉽지 않았다. 좋은 건 확실한데, 그걸 옮길 말이 없었다. 좋아할수록 조금 외로웠다. 그런데도 나다운 걸 다시 만날 때마다 벅찼다. 이 느낌을 아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.

언젠가부터 내가 뭘 원하는지 조금씩 알게 되어 간다. 남들이 좋아하는 것 말고, 내가 정말 원하는 것. 예전 같으면 누군가에게 확인받고 싶었을 텐데, 요즘은 그렇지 않다. 내가 좋아하는 것들, 진짜 내 물건들 사이에 있을 때 그렇다. 대단한 변화는 아니다. 여전히 헷갈릴 때가 많다. 다만 어디를 보고 가면 되는지는 조금 분명해졌다.

사람은 결국 곁에 둔 것에 영향을 받는다. 누구를 만나느냐가 그렇듯, 매일 무엇을 지나치느냐도 그렇다. 그래서 의지로 버티는 대신, 주변을 그렇게 만들어 두기로 했다.

집에는 내가 고른 물건과, 어쩌다 그냥 있게 된 물건이 있다. 언제 어디서 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것들. 그런데 이상하게, 매일 손이 가는 물건일수록 그쪽이다. 지금 주변을 둘러보면 아마 몇 개는 바로 보일 거다.

그런 물건이 제일 많이 모여 있는 데가 현관이었다. 하루의 시작이고 마감이고, 안과 밖이 만나는 자리인데도,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. 그리고 요즘 그 자리에서 하루에 한 번쯤 작은 기쁨이 생긴다. 택배가 온다. 이렇게까지 자주 무언가 도착하는 시절은 없었다. 상자를 여는 건 나에게 선물이 도착하는 순간에 가깝다.

손잡이 시제품을 손에 쥐어 보는 모습

첫 물건을 언박싱커터로 정한 건 그래서였다. 처음 한 고민은 이거였다. 택배를 뜯을 때, 무엇이 더 나아질 수 있을까. 답은 몇 개 찾았다. 그런데 찾을수록 이상했다. 아무리 잘 만들어도 이건 몇천 원짜리 작은 도구고, 쓰고 나면 서랍에 들어간다. 조금 더 잘 드는 것으로는 이 물건이 서랍 밖으로 나올 이유가 되지 못했다.

그래서 질문을 바꿨다. 더 잘 들게 하는 대신, 쥐었을 때 기분이 좋으면 어떨까. 택배를 뜯는 시간은 하루에 30초쯤이다. 짧고, 여태 인지해본 적 없는 순간이다. 그 30초가 조금 좋아지는 물건은 더 이상 도구가 아니다.

정해진 쓰임, 매번 새로운 순간.

kijo는 집 안에서 소외된 자리를 다시 쓸 수 있게 만든다. 첫 무대는 현관이고, 그곳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행동을 다시 설계한다. 택배를 뜯는 동작에서 시작해 그다음 동선으로 이어지는 시리즈를 계획하고 있고, 이번 물건은 그 첫 번째다.

기조(基調)는 하나로 흐르는 바탕음이라는 뜻이다. 어떤 곡이든 그 아래에 깔려서 곡을 곡답게 만드는 소리. 취향의 목록이 아니라, 취향을 대하는 자세를 그렇게 부른다. 깊이 빠져드느라 조금 외롭기도 한 사람들에게, 기조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.

좋아하는 걸 잔뜩 늘어놓아도 괜찮다. 설명은 하지 않아도 된다. 매일 지나는 자리에서, 스스로 알고 있으면 된다.